• 관덕정에서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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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장성자 동화작가
  • 19.09.16 09: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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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시작된 골목을 따라 관덕로로 걸어갔다. 호텔과 음식점과 가정집을 지나며 그 자리에 있었던 초가와 밭과 돌담을 상상했다. 걷고 있는 골목이 올레였을 거라 생각하니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걸음이 가볍다.

8월의 햇살이 뜨거워서였을까. 높은 건물들이 가로수처럼 늘어서 있고, 차들이 가득 차 있는 관덕로에서 잠시 길을 잃었다. 어느 방향에 관덕정이 있더라? 두리번거리다, 빨간 우체통과 키 큰 녹나무와 지하도 위 커다란 환풍기 사이로 언뜻 비치는 기와지붕을 보았다.

 

제주에 올 때면 일정에 쫓겨 차 안에서만 아련히 보았던 관덕정 앞에 섰다. 시원스레 뻗은 팔작지붕을 사방과 가운데서 붉은 기둥들이 떠받치고 있고, 기둥들 사이가 뚫려있다. 주변보다 조금 높은 기단과 처마 아래 <관덕정>이라는 현판이 없다면 바람 잘 통하는 정자로 오해를 받을 것도 같았다. 하지만 관덕정은 현존하는 제주의 제일 오래된 건축물이며, 행정과 역사의 중심지로 자리매김 되고 있었다.

 

관덕정은 1448년 조선 세종 때, 병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제주목 관아의 서쪽에 세워졌다. 문과 무의 바른 정신을 본받기 위해 활을 쏘는 것은 높고 훌륭한 덕을 쌓는 것이다라는 예기의 내용에서 관덕이란 이름을 따왔다 한다.

기단을 올라가 붉은 기둥으로 둘러쳐진 넓은 마루를 보았다. 어린 시절 살던 집, 안거리의 상방을 닮은 듯도 하다. 상방에선 가족들이 모이기도 하고, 동네 어른들이 모이기도 하고, 잔칫상이 펼쳐지기도 했었다. 관덕정도 세월과 역사의 변화에 따라 회합의 장소였다가, 행정의 장소가 되기도 했고, 겉모습도 수차례 바뀌는 500 년이 넘는 세월을 간직하고 있었다.

 

 

마루 끝에 앉았다. 앞에 광장이 있다. 복원된 목관아와 넓은 도로 사이, 마치 앞마당 같다. 무심히 지나가는 사람들과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여행객들이 있다.

500여년의 시간 동안 관덕정이 보았을 수많은 제주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바다로 빙빙 둘러쳐진 섬, 들고 나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만 했을 그들의 한계와 희망을 관덕정도 보았겠지. 서로 대립하여 죽고 죽이는 사람들을 보며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식민지가 되어 탄압 당하는 사람들을 보는 고통에, 일제에 의해 처마가 잘려 나가는 수모를 어떻게 견디었을까. 경찰의 총알에 죽어가는 엄마와 울부짖는 아기를 안아주지 못한 자책에 괴로워하지는 않았을까. 차라리 아무 것도 보지 않고 땅 속으로 푹 꺼지고 싶은 순간도 많았으리라.

 

하지만 제주 사람들은 봄이면 찾아와 입춘굿을 열어 한 해의 시작을 관덕정과 함께 했다. 오일마다 장을 열어 생필품을 사고팔며 서로 소식을 물었다. 더 잘 살기 위해, 더 사람답게 살기 위해 이곳에 모여 의논하며 힘든 시간들을 이겨냈다. 산과 바다에 흩어져 살던 사람들이 언제든 달려와 함께 할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관덕정이었다.

기둥에 손을 대고 처마를 올려다보며 마음을 전해 본다.

고마워. 제주 사람들과 함께 해줘서.’

관덕로를 따라 걷고 싶다. 사람들 사이로 걸어간다. 관덕정이 보았을 오늘, 그 속에 나도 영원히 살게 되었다.

 

 

장성자 동화작가

(제주 출생. 동화작가. 마해송 문학상 수상. <모르는 아이><비거, 하늘을 날다><여기가 상해 임시 정부입니다><내 왼편에 서 줄래>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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