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소한 제주 이야기] 여행자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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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라라 여행작가
  • 19.04.18 09:3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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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도시 독일의 베를린에서 손님이 왔다. 그녀의 이름은 메렛. 성형외과 인턴 과정을 위해 한국의 모 병원에서 4주간의 인턴과정을 마치고 그녀의 엄마와 이모가 한국에 와서 함께 여행 중이라고 했다. 그녀는 서울과 부산을 거쳐 마지막으로 제주에 도착했다. 애초 서울과 부산만 여행할 계획이었던 그녀는 병원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들이 다른 데는 몰라도 제주도를 꼭 가보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그녀는 그렇게 제주의 애월읍 하귀리의 우리집에 도착했다.

 

 프랑크 푸르트에서 온 이모는 렌터카를 빌렸다. 덕분에 그들의 여행은 구석구석 편안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한국 가정식을 다양하게 맛보고 싶다는 그들을 위해 나의 아침은 분주해졌다. 아침이면 나의 작은 정원에 나가 풀을 뜯어와 텃밭 샐러드를 만들고 두부를 조리거나, 들깨가루를 넣은 무나물을 만들고, 호박 부침을 하거나 예쁘게 돌돌 말아 계란말이를 만들고, 어묵을 볶고, 카레를 만들고, 들깨 수제비를 만들고, 김치볶음밥을 만들며 평범하지만 다양한 한국 가정식을 조식으로 준비했다.

 

 

꽤 오랫동안 우리집에서 머물던 그들과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나는 매일 매일, 오늘 가보아야 할 제주의 곳곳과 맛있는 로컬 식당을 소개했다. 주로 유명한 관광지가 아닌 조금 숨겨져 있거나 발품을 팔아야 하지만 분명 아름다운 곳이었다. 나는 제주도를 동서남북으로 나뉘어 그날그날의 날씨에 따라 지도를 펼쳐두고 동선을 계획해 그들의 여행을 도왔다. 머무는 동안 우리 동네의 소소한 마을 식당을 소개해주기도 했는데 그 어느 레스토랑보다 아주 마음에 들어 했다.

 

 그녀들이 떠나기 마지막 날, 글라스 와인 파티를 하자고 했다. 독일에서 가져왔다는 독일 어딘가의 와이너리 와인을 마시며 우리는 마지막 밤을 긴긴 이야기로 마무리했다. 그중 60대 이모, 로즈메리는 이제 한국을 떠나 싱가폴을 경유해 남인도의 케랄라[Kerala]에 간다고 했다. 그녀의 여행 가방은 긴 여행을 준비해서인지 꽤나 묵직했다. 조금은 어색할 동양의 한국 문화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그들의 자세는 존경스러웠다. 특히 제주의 수많은 오름과 해녀에 대해 이미 충분할 만큼 공부를 하고 온 독일 손님들은 제주의 흥미로운 돌담과 날씨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바라보기도 했다. 잘 구운 삼겹살을 멜젓에 콕 찍어 먹는 그 맛과 다양한 종류의 김치와 좁착뼛국을 아무 거리낌 없이 시도해 먹는 모습도 참으로 멋있었다. 특히 젓가락 사용이 불편할까 나는 늘 조식 시간이면 그들이 사용할 포크도 내놓았지만, 그들은 참 열심히 서툰 젓가락질을 했다. 여긴 한국이니까 쇠젓가락을 사용해야 해, 하며.

 

 

먹는 것뿐인가, 그녀들이 머물다 간 집은 말도 못하게 깨끗했다. 어쩌면 흡사 처음 세팅되었던 그 모습처럼 그대로인 듯, 모든 것은 완벽에 가까울 만큼 정리정돈이 되었다. 심지어 그동안 머물며 나왔음직한 일회용품도 씻고 말려서 오후가 되면 클린하우스에 잘 정돈해 하나하나 분리수거해 버리기도 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해도 그들은 자신이 가져온 것들을 늘 완벽하게 분리해서 버렸다.

 

 

외국에서 독일 사람들을 자주 만났었다. 뭔가 똑 부러지고 남에게 피해 주지 않으려는 그들의 자세는 흔한 독일인 특유의 모습이었다. 어딘가 일본인 여행자들과 비슷하기도 했던 그들은 개인적으로 나의 성향과도 비슷해서 나는 쉽게 친해지곤 했었다. 여타 다른 유럽의 사람들과 확연하게 다른 성향이 분명히 있었다. 나는 그들의 확고하고 품격 있는 자세가 늘 좋았다. 그들이 바라본 안전하고 깨끗한 한국이라는 나라와 그 중 남쪽에 위치한 따뜻하고 아름다운 섬 제주는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바다에 둘러싸인 섬 제주를 나보다 더 어루만지고 아껴주는 여행자의 자세에서 나는 감동한다. 며칠 후, 그녀들이 떠나고 동네 식당과 선술집에서 사장님들이 우연히 만난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아니 살다가 그렇게 매너 있고 멋있는 외국인은 처음 봤어! 음식도 어쩌면 그렇게 야무지고 깨끗하게 잘 먹어주는지, 앉은 자리에서 조곤조곤 조용히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독일 사람들 대단하구나 느꼈지 뭐야. 깍듯하게 인사하고 갈 때면 저게 품격이구나 싶더라니까.”

 

 

내 추천으로 하귀리 곳곳의 나의 단골 식당에 보내 로컬 음식을 맛보게 했던 그곳의 사장님들은 이런 말을 했다. 내 손님인 게 자랑스러워 나는 어깨를 한번 으쓱한다. 며칠 후 나는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제주에서 좋은 여행을 하게 해줘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인도 여행 중인 로즈메리의 사진이 있었다. 그녀들은 세상 어디에서도 이렇게 또 품격 있고 따뜻한 눈빛으로 여행을 하겠지. 노트북을 열어 나 역시 당신들과인 만남으로 많은 걸 느끼고, 고마웠다는 답장을 보낸다.

 

우리 언제가 어느 시절, 베를린이나 인도에서 다시 만나기를 바라본다며.

 

 

-여행작가, 라라

 애월에서 소규모숙소<달빛창가302>를 운영, 여행서<연애하듯 여행>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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